흔히 사춘기의 정신 상태는 날카롭지만 깨지기 쉬운 유리조각과 같다고 말한다. 베일 듯한 그 날카로움이 시간이 지나면서 부드럽게 되는 것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알 수는 없으나 확실히 날카로움은 언젠가 사라지고 만다.
그런데 남성 독자나 작가에 비해 여성 독자와 작가들은 이 사춘기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듯 하다.
많은 여성 작가들의 작품이 사춘기를 지나기까지의 주인공의 내면을 끊임없이 그리고 독자들도 변함없이 이러한 소재에 호응하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돌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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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사춘기의 정신 상태는 날카롭지만 깨지기 쉬운 유리조각과 같다고 말한다. 베일 듯한 그 날카로움이 시간이 지나면서 부드럽게 되는 것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알 수는 없으나 확실히 날카로움은 언젠가 사라지고 만다.
그런데 남성 독자나 작가에 비해 여성 독자와 작가들은 이 사춘기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듯 하다.
많은 여성 작가들의 작품이 사춘기를 지나기까지의 주인공의 내면을 끊임없이 그리고 독자들도 변함없이 이러한 소재에 호응하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와 단 둘이 살던 희진은 아버지의 재혼으로 동갑의 남동생이 생겼다.
어렸을 때부터 알아온 영호이기에 낯설지는 않지만 역시 갑작스레 동갑의 남자와 가족이 되는 일은 어색하다. 무엇보다 희진과 영호가 서로를 가족이 아니라 이성(理性)으로 바라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새 아이를 가지게 되면서 가족으로 돌아가려 노력하지만 사랑의 열병은 더욱 강렬하게 이들을 사로잡는다.
결국 둘의 관계를 눈치챈 어머니에 의해 잠시 떨어져 살게 된 영호와 희진. 몰래 만나기로 약속한 날 영호는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불면증』은 쓸쓸한 성장드라마다.
제각각의 모양을 띈 사이다병 조각이 '마모'되어 모두 비슷한 둥근 형태를 띄기까지의 과정은 '성장'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영호의 입을 빌어 작가는 그것을 '상처투성이의 흔적들'이 늘어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작품의 주인공 희진은 어머니의 죽음, 영호와의 사랑, 영호의 죽음이라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 모나지 않는 '어른'이 되었다.
희진에게 있어 '어른'이 됨은 인격적으로 성숙하거나 사회의 가치를 내면화한 세속적인 인간이 됨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생생한 고통과 기쁨 등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는, 항상 벽을 둘러싸고 살아야 하는 사람이 됨을 의미한다. 그 편이 덜 즐거울 지는 모르지만 확실히 덜 아프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상과 차단하면서 '관계'는 더욱 의미없는 것이 된다. 희진은 수학 선생님이 사준 옷에 굳이 옷값을 지불해야 직성이 풀리는 고등학생에서 그 옷값을 어디에 썼는지 기억도 못하는 어른이 되었다.


불시에 찾아온 기억에 무방비 상태로 울어버리기도 하지만, 희진은 '전보다 훨씬 두껍고 튼튼한 벽을' 만듬으로써 고통을 이겨낸다.
'이런 순간들이 반복되다 보면 깨진 유리조각처럼 날카롭고 예민했던 그 시절들의 나는, 언젠가- 말끔하게 다듬어진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오랜 시간- 거친 파도에 마모된 바닷가의 유리돌처럼-' 희진의 독백으로 작품은 끝을 맺는다.
많은 여성들에게 '살아간다는 것은 그토록 힘겨운 것일까.


<한국만화문화연구원 박소현>